'한국현대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1.01.20 별 헤는 밤-윤동주
  2. 2008.08.16 김소월 '초혼'
  3. 2008.02.08 [한국현대시] 상현(上弦)-나희덕
  4. 2008.02.06 [한국현대시] 식민지의 국어시간-문병란
2011. 1. 20. 16:24

별 헤는 밤
                            윤동주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니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아아... 윤동주.
오늘 갑자기 이 시가 생각났다.
쓸쓸하면서도 어딘지 희망이 느껴지는 시이다.
감상을 다 적을 수 없는 이유는 나의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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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8. 16. 05:00


김소월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 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넒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 많은 시를 배워도, 그 중에 가슴에 박히는 시는 따로 있다.
'초혼'만큼 격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차마 그 감정을 토해내지 못해 가슴 매이는 시는...
다시 없으리라...

'초혼'의 감정은, 격하게 끓어올라 공중에 흩어지지 못하고, 
목 언저리에서 맴돌아 목이 매인다. 
해가 대신 피를 흘리고, 사슴이 대신 슬피 운다.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다. 

불러도, 불러도... 들을 사람이 없으니 갈 곳 없이 목 언저리에서 맴돈다.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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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워터아이
2008. 2. 8. 05:00

 상현 (上弦)

                                                   나희덕



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 사라졌다가

다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뜨거운 숯불에 입술을 씻었던 이사야처럼!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6. 05:00


식민지의 국어시간



                                                   문병란


내가 아홉 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 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에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성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시간이여.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