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 24. 12:32

  이것은... 플로피 디스켓이라고 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른다.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FDD : floppy disk driver )를 안 쓴지 오래되었다. 집에 FDD가 있긴 할텐데 조립하기 귀찮다. 해서, 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다 버리기로 결심한 우리 아버지. 하지만 뒤져보면 저만큼 또 나올거다. 


  90년대 초반에는 CD케이스 크기의 종이장같은 디스켓을 썼었다. A드라이브에 넣고 썼었다. 그 때는 컴퓨터 본체가 대부분 책상 위에 놓여있었고, 지금처럼 스텐드형이 아니라 누워있었다. 그 위에 모니터를 올려놓는 방식이었다.  

  대략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다들 저 플로피 디스켓을 썼다. 용량은 1.44MB. 간혹 2메가짜리 대용량 플로피 디스켓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진한 장 못 넣는 비루한 용량이지만, 그때에는 고화질 디지털 이미지도 없었고, 거의 텍스트 위주의 문서만 다루었기 때문에 저 용량도 그럭저럭 쓸만했다. 문서 뿐만 아니라 게임도 저 디스켓 하나에 몇 개씩 담아서 교환하곤 했었다.  이건 B드라이브에 넣고 썼다. 

  2000년대 초중반부터 플로피 디스켓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초고속인터넷이 확산되고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대용량 파일들이 늘어가니까 더 이상 1.44메가의 작은 용량으로 데이터를 교환하기 어려워 진 것이다. CD라는 700MB 가량 담을 수 있는 매체도 있었지만 재기록이 불가능해서 수시로 내용이 변경되는 문서파일을 교환하기에는 부적합했다. 그래서 보관용 파일은 CD에, 작성중인 파일은 이메일을 통해 교환하는 방식을 취했다.

  2004년 무렵에 USB메모리가 나타났다. 손가락 두 개 크기도 안되는 조그만 녀석에 32MB나 담을 수 있다니! 약 3만원 정도 줬던 것 같다. 당장 그놈을 샀다. 그리고 유용하게 썼다. 하지만 USB 메모리는 1~2년 새에 더 작아지고, 용량도 빠르게 늘어났다... 지금은 사은품으로 받은 4G짜리 메모리를 쓰고 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이다. 

  가지고 있는 파일은 점점 대용량이 되었다. 그리고 하드디스크의 용량대비 가격도 점점 내려갔다. 그래서 요즘은 보관용 파일이든 수시로 변경되는 파일이든, 모조리 외장하드에 담아두고 사용한다. 500GB나 담을 수 있는 외장하드가 장지갑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는다. 저기 쌓여있는 저 디스켓 용량을 모두 합쳐봐야 50MB도 안 될 것이다.   


  이 엄청난 변화가 불과 10여년 사이의 일이다. IT기술은 정말이지 너무도 빠르게 변한다. 나는 그 빠른 변화에 편승한 IT의 노예다. 컴퓨터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저 디스켓을 버리며, 나는 문득 이 엄청난 변화가 두려워졌다.

  저것은 실체이되 실체가 아니다. 물리적인 형태를 띄고 있지만 정작 저것을 가치있게 할 '내용'은 이제 없다고 할 수 있다. 영혼 빠진 인간이나 마찬가지. 즉 저것은 데이타의 시체다. 하지만 저 안에는 분명히 데이터가 있다. 단지, 읽지 못할 뿐이다. 저것을 저것 답게 할 '무엇'이 이제 없는 것이다. 

  손으로 쓰고 기록한 것은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그 내용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기록하고 생산하는 것은 어느 순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 

  아니, 이렇게 몇 줄의 글로 나의 두려움이 정리되지 않는다. 단지, 빠른 시간안에 일어난 이 엄청난 변화가 왜인지 혼란스럽게 느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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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워터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