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3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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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아버지입니다. 이 실루엣은 색종이로 만들어진 것을 스캔한 것으로, 사람 실루엣을 밑그림도 없이 순식간에 오려낼 수 있는 재주가 있는 분께서 몇초만에 뚝딱 만들어 주신것이라고 합니다. 전경과 배경 두 장이 저희집 액자 안에 들어있답니다. 아버지의 실제 사진을 올리고 싶지만 아버지께서 웹상에 정보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실루엣으로 대체합니다. ^^

  아버지는 엄한 분입니다. 딸의 대학 1학년때 통금을 8시로 제한했을 정도입니다. 주장이 확고하시고 본인이 한 번 정하신 일에는 물러섬이 없으셔서 마찬가지로 고집 센 저와는 마찰도 많습니다. 때문에 아버지가 아주 싫을때도 있어요. 특히 아침시간에는 둘 다 예민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서 일부러 늦잠을 자기도 한답니다. :) 깨어있으면서도 자는척 하다가 진짜로 잠들어서 늦잠자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때때로 별 거 아닌 일에 버럭 성질을 내기도 하고요. 쓸데없는 일에 고집을 피우시기도 합니다. 특히, 엄마가 잘하려고 한 일을 알아주지 않고 본인 기분대로 성질내는 것을 보게 되면 정말이지 아버지가 아주 싫어진답니다. 그러고서 사과도 잘 안하시거든요. :P

  근데 가만 생각해 보면 제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 제가 닮았네요. ㅠㅠ 전 어쩔 수 없는 아버지 딸인가봅니다.

  아버지가 아주 싫을때도 많지만, 역시 우리 아버지는 존경할 수 밖에 없는 분입니다. 팔불출 같지만 아버지 자랑좀 해 볼께요.

  일단 잘생기셨습니다! 저 실루엣만 봐도 짐작가지 않으십니까?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본 일이 있는데 그때에도 물론 잘생기셨지만 제가 보기에는 요즈음 모습이 훨씬 잘생기셨어요! 얼굴이 조금 큰 편이고 눈이 작으신데, 얼굴 각이 뚜렷하고 콧날이 오뚝 서 있어서 "남자답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분이랍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임신 12개월이셨는데 문제의식을 느끼시고 서서 일하기 시작하시더니 지금은 배도 꽤 들어가셨습니다. 덩치도 좋으시고 키도 크시고 얼굴도 잘생긴 킹카랍니다.

  엄하지만 편합니다. 본인이 아니다 싶으신 부분에는 절대 물러섬이 없으시지만 그 이외의 곳은 터치하지 않으십니다. 조여야 할 곳과 풀어야 할 곳을 정확히 구분하시는 분이시지요. 유머감각도 있으셔서 딸들과 같이 농담을 나누기도 합니다. 함께 게임도 하고 만화책도 볼 수 있는 친구같은 분입니다. 물론 밤새 게임하고 있으면 싫어하시긴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크게 뭐라 하시진 않네요. 하지만 통금은 여전하답니다. ㅠㅠ

  바르게 사십니다. 술 담배 안 하시고요. 퇴근시간을 어기지 않습니다. 시간 딱 되면 들어오셔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지요. 아버지께서 바르게 사시니... 제가 못마땅해도 여태 통금을 어기지 않고 사는겁니다. ㅠㅠ 사치, 낭비 안 하시고요. 그러면서도 써야 할 곳에는 분명히 씁니다. 근검절약, 절제, 근면... 우리 아버지에게 아깝지 않은 단어들입니다.

  현명하시고, 독서가이시고, 컴퓨터도 잘하십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 있으면 아버지와 딸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수준입니다. 오피스 프로그램 활용에 있어서는 제가 밀리지요. 기계같은 것도 잘 고치시고요, 다림질도 잘 하십니다. 요리는 잘 안하시지만 실은 요리도 잘하십니다. (비밀인데, 바느질도 잘하십니다. 그러나 안하시지요. 훗훗.)

  아버지 자랑할 거리는 많지만 뭐니뭐니해도 아버지가 가장 존경스러운 부분은, "아직도 자기 발전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 점 때문에 요즘 더욱 아버지가 존경스러워졌답니다. 아직 경제활동 하고 계시고요, 그 와중에도 학위에 도전하고 계십니다. 게다가 주말이면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계시고요, 나이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는 무얼 하고 싶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종종 하십니다. 자세히 쓰고 싶지만 너무 자세히 쓰면 사생활이 너무 공개되는 것 같아서 두리뭉실하게 썼네요. ^^;

  멋진 분이시죠?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어야 할텐데 어쩐지 아버지 발끝에도 못 미치는 딸인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얼른 합격을 하면 아버지께서도 한시름 놓으실텐데요... 죄송해요 아버지...

  시집갈 나이가 되다보니 요즘 종종 푸념삼아 하는 말이 있답니다.
  "내가 아빠때문에 연애를 못하는거야. 눈이 아빠한테 맞추어져 있으니 왠만한 남자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단 말이야."
  우리아버지는, "아빠보다 좋은 놈 데려와야지 무슨 소릴!"이라고 말씀하시지만... 글쎄~ 그건 쉽지 않아 보여요. 눈을 좀 낮춰야 할텐데 큰일이지요.

  존경하는 아버지.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되기위해 더욱 노력할께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나중에 제 아이들에게도 꼭 모범이 되어주세요. ^^ 사랑해요~ ♡


Posted by 워터아이